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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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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밤,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고 무사히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찾아갔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앞으로의 교환학생 생활이 어느 정도는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시작부터 고비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예상대로 흘러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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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기숙사가 아니라 자취를 한다고 하면 보통 주방, 화장실 그리고 생활공간이 다 합쳐진 원룸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다르다. 스페인에서는 한 아파트에 적게는 3명, 많게는 8명 이상까지 각자의 방이 있고 거실과 화장실 그리고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피소(Piso, 영어로는 Flat)에서 생활한다. 아마 청춘시대에 나오는 셰어하우스 형태라고 보면 된다. 내가 가는 폼페우는 공식적으로는 기숙사가 없고 대학과 연계된 민자기숙사들은 개인실도 아닌 2인실이 어마무시한 가격을 자랑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피소에서 살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 피소 구하는 법, 주의사항들을 알아왔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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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호스트 마르쿠스도 말해줬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방을 구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플랫폼은 이데알리스타(Idealista, http://www.idealista.com )다. 들어가서 사용자가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면 조건에 맞는 방들이 쫙 나열되고 원하는 방이 있으면 게시글에 나와있는 연락처에 연락하여 약속을 잡고 방을 보고, 운 좋게도 맘에 든다면 계약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말만 들으면 너무너무 쉬운 것 같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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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의 조건은 이러했다.
1. 함께 사는 인원은 상관 없다.
2. 룸메이트가 4명 이상일 경우, 화장실은 2개 이상, 즉 화장실 당 이용자는 3명 이하
3. 룸메이트는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어도 20대여야 한다.
4. 혼성보다는 남자끼리 쓰는 집을 선호
5. 방에는 창문이 있어야 하고 침대, 책상, 옷장을 구비해야 한다.
6. 옷장이 없으면 적어도 행거를 사서 놓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7. 가장 중요한 에산은 350유로, 보증금은 한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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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시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집을 찾기란 정말 하늘에 별따기 같은 수준이었다. 4번까지는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350유로라는 조건 하에서 일정 크기 이상의 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예산을 400유로까지 늘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400유로도 적은 편에 속했나보다. 맘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무턱대고 지하철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더니 요새 바르셀로나 전반적인 집값이 올랐다고 400유로에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찾으면 운이 좋은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 예산을 잡아야 하나 흔들리긴 했지만 엄청 넉넉한 형편으로 교환학생을 온 것이 아니기에 집값에 너무 많은 돈을 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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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서울에서 자취방을 알아볼 때 직방과 같은 앱에서 허위매물을 많이 발견했던 것처럼 이데알리스타에도 허위 매물이 엄청나게 많다. 직방에서 겪은 경험 덕분인지 몰라도 허위매물은 쉽게 거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허위매물이 아닌 맘에 드는 방을 찾아도 집주인이 연락이 잘 안된다는 점이다. 심카드를 사서 이제 스페인 전화도 가능한데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도 않고, 왓츠앱(What's APP)으로 문자를 남겨놔도 읽씹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다. 스페인은 한국처럼 정 문화가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중요시한다던데 인연은 개뿔, 쉽게 쉽게 씹어주셨다. 혹시나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해서 나를 기피하나? 하는 인종차별적 생각을 문득 하게 되어서 자기 소개에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도 뺐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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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친듯이 집 구하기를 계속하고 나름의 요령이 생긴 나는 연락이 닿은 집주인과 약속을 잡아서 집을 보러 가기 시작했다. 큰 발전이었다. 연락이 되어 집도 보러가다니! 하지만 첫 집에서부터 깨달았다. 프사기는 프로필 사진에만 쓰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진과 다른 집이 정말 많았다. 내가 보러 간 집만 10개는 넘는 것 같은데 사진과 동일했던 집은 딱 하나였다. 그리고 보통 한국에서는 부동산에서 집 보러 온다고 하면 나름 정리를 하는데 얘네는 그렇지 않다.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서 더러운 것 같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게다가 각도빨이 죽여서 사진 상으로는 침대를 제외한 가용 공간이 많아보였던 것도 그냥 침대 옆에 내가 서면 꽉차는 그런 방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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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관이었던 것은 내가 집을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세입자 면접을 보러가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무슨 소리냐면, 위에서 말한 사진과 똑같이 생긴 집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들어가자마자 다른 집주인과는 달리 한국에서 왔냐며 지도 제주도 가봤다고 나는 한국과 엄청 친하다고 입 바른 소리를 겁나 해대더니 방 자랑을 엄청 헀다. 보통은 그냥 방에 대해 설명을 하지 이게 좋은 방이라고 자랑하고 칭찬하지는 않는데 이 집주인은 달랐다. 이 집의 장점에 대해 이런 소리, 저런 소리 계속 늘어놓고 마지막으로 계약서를 보여줬다. 그런데 계약서 가격이 비어있었다. 이게 무슨 일? 그래놓고 하는 말이 이렇다. "너도 여러 집을 보러 다니지만 나도 집 보러 오는 애들이 많이 있어ㅎㅎ 내가 사이트에는 375유로로 올려놨는데 아까 집 보러 온 애는 맘에 든다고 400유로까지 낸다고 하드라? 자, 그렇다면 너는 얼마까지 낼 마음이 있니?"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인가. 지금 경매를 하는건가?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나는 돈이 없다. 그래서 사이트에 올라온대로만 하곘다고 강경하게 나갔다. 그랬더니 약간 무안해졌는지 알겠다면서 물론 높이 부른애를 살게 하는 건 아니라면서 성격(정확히는 Personality라고 헀다)을 보고서 맘에 드는 세입자에게 자기가 연락하겠다고 했다. 정내미가 뚝 떨어져서 연락이 와도 안 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실제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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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오는 집주인도 점점 줄어들고, 위와 같은 상황을 겪다보니 맘이 조급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 몰라서 문의했었던 스짱 회원 집에 다시 연락을 했다. 13일에 입주 가능한 집이고 400유로인데가 화장실이 2개란다. 게다가 사진을 보내줬는데 내가 원하는 사이즈, 공간이었다. 원래 교환 오면 한국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현지인하고만 어울려서 스페인어 늘려가야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또 한국인이라는 조건만 빼면 완벽한 집을 만나니까 덥석 물고 싶어졌다. 물론 13일 입주라서 그 전까지 숙소를 해결해야 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집을 보러가기도 전에 엄마, 수영이랑도 통화해보고 고심한 끝에 바로 내가 살기로 결정했다. 집 구하느라 받는 스트레스, 우울감 등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내가 13일 전까지 내야 하는 숙소비보다 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숙소를 구했다. 그리고 한아랑 대화하다보니 내 방 위치가 한아가 정말정말 강추하던 그라시아 지구라는 것도 알게 되어서 더욱 기분이 좋다. 이제 13일까지 대기하며 입주할 일만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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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구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숙사를 400유로도 안되는 값으로 제공하는 UAB로 교환을 갈걸하는 후회가 아주 아주 살짝 들긴 했다. 그렇지만 UAB는 대학교 위치가 넘 구리고(지하철로 말하면 T-JOVE를 Zone2로 사야한다) 시내에 나가기 불편하다는 단점을 감안하면 폼페우가 훨씬 좋은 것 같고 또 결론적으로는 집을 잘 구했으니 마음이 놓인다. 이제 입주 전까지 신나게 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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