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교환학생] 바다가 아름다운 시체스(Sitges)
11.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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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까딸루냐의 날(La diada de Catalunya)이었다. 까딸루냐 지역은 오래 전부터 스페인에서 독립하기를 열망해왔다. 스페인어권 문화의 이해 수업을 들을 때도 까딸루냐 지역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 나름 자세히 공부했었다. 프랑코 독재 시절 탄압 받았던 지역이기도 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고 배웠었다. 그렇지만 독립하자는 의견이 대표성을 띠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자체적으로 실시한 주민투표에서도 독립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겨우 과반을 넘긴 수준이었고 오히려 정치적인 이유에서 정치인들이 독립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까딸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치국이 된다면 하나의 국가로서 EU에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할테고(스페인이 절대 이들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을테니) 경제적인 이유에서 독립을 추구했다가 도리어 경제적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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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튼 어딜 가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까딸루냐 깃발을 들거나 얼굴에 까딸루냐기 페이스페인팅을 한 사람들이 연설하는 방송들이 즐비했고 건물들 테라스에서도 까딸루냐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큰 퍼레이드도 있다고 해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를 뒤로 하고 시체스로 떠났다. 까딸루냐의 날을 구경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겠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살짝 떨어져서 혼자 여행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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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스는 시체스영화제로 잘 알려져 있는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전지현과 이민호가 출연했던 푸른 바다의 전설, 그리고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 가는 법은 어렵지 않다. 산츠역 혹은 파세익 데 그라시아 역에서 렌페 티켓을 끊고 30분만 가면 된다. 어렴풋이 기억해보자면 왕복 티켓이 10유로 이내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렌페를 타고 가는데 KTX와는 다르게 아예 좌석들이 서로를 마주보게 되어있고 또 의자가 딱딱해서 굉장히 불편하다. 왜 사람들이 그라나다나 세비야 같은 곳을 갈 때 돈을 더 주고라도 1등석을 끊는지 알 것 같았다. 뭐 시체스는 30분만 버티면 되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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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0분들을 달려 시체스역에 도착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시체스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기차 안에 전광판 같은게 없어서 지금 도착한 역이 어딘지 방송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지만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걱정할 필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시체스에서 내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내릴 준비를 할 때면 아 시체스구나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린 시체스역은 햇살로 가득했다. 찍은 사진은 마치 일본 교토에 있는 시골 마을역 같이 나왔는데 햇살로 가득차서 너무 아름다웠다. 단지 내가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는게 흠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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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스역에서 시체스 바닷가로 가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고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는 구글맵만 있으면 길찾기는 진짜 식은 죽 먹기다. 까딸루냐의 날이어서 그런지 열지 않은 상점들도 많이 있었다. 길 구석구석이 너무 예뻤고 간혹 하얀색 건물들이 있어서 그런지 지중해 느낌이 물씬 났다. 그리스 산토리니 부럽지 않은 색감이랄까?
아직 바르셀로나 정착 초기라서 유럽 감성 뽕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골목 하나하나가 너무 이뻤다. 스페인은 건조해서 햇살이 엄청 쎄더라도 그늘만 가면 선선하고 걸어다닐만한데 골목에는 당연히 햇볕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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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다에 도착했다.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강했는데 이 햇살에 바다에 비춰져서 반사되니 장관을 이루었다. 바다를 당장 가까이서 구경할 마음은 없었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예전에 스페인어 공부할 때 이렇게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천막, 포장마차 같은 가게를 Chiringuito라고 한다고 배웠는데 아마 내가 들어간 곳이 그랬던 것 같다. 천막 밑에서 반짝이는 바다와 철썩이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바다 근처여서 그런지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바다 내음까지도 맡을 수 있었다. 그러한 장소에서 먹는 감바스 알 아히요와 보까디요는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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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나와 백사장을 거닐면서 사진 찍고 또 바다 한가운데까지 돌길이 이어져 있어서 그 위에 올라가서 돌에 걸터앉아 바다를 감상했다. 아 시체스를 가기 전에 미리 시체스에 대해 알아봤을 때 시체스에는 게이가 많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같이 사는 누나가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오히려 나는 당당히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갔었다. 얼마 전 에라스무스 친구들과 얘기할 때 한국 보이그룹은 다 게이 같아보인다고 했었는데 보통 옷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눈화장, 메이크업을 한 남자들이 밝은 색의 옷, 특히 핑크나 노랑색이 들어간 상의에다가 스키니 바지를 입은게 그렇게 게이같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건 티비에서도 봤었는데 흰 바지를 입거나 바짓단을 접어서 입는게 거의 게이의 상징이라고 한다.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는데 거기서 바로 대꾸하거나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블라블라 했었는데 이 날은 게이처럼 보이면 어때? 내가 옷 입는걸 가지고 누가 나를 멋대로 판단해! 라는 마음으로 핑크색 티셔츠를 코디했다. 시체스 해변에는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영하는 큰 해변이 있고 그 옆에는 누드비치가 있다. 실제로 누드비치인줄 모르고 백사장에 들어가서 셀카를 찍으려다가 나체의 여자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후다닥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누드비치 옆에는 게이비치가 있다. 그 정도로 시체스는 게이들에게 인기 장소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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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바다에 뛰어들어서 수영하지 않고 눈으로만 보고 있으니 약간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더욱 슬픈건 대도시가 아니라 근교여서 그런지 잡히는 와이파이가 없고 그 흔한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고 와이파이가 있는 가게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핸드폰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야외에 의자가 있는 식당에 가서 로제와인을 주문했다.
외식 물가는 후덜덜하지만 그래도 여행왔으니 이 정도는 써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부자 코스프레를 했다. 사진만 봐도 고급지지 않은가! 와인 한 잔 시켜놓고 그늘 밑에서 바다를 떡하니 계속 정말 계속 쳐다봤다. 좋은 장소에 오니 함께 왔으면 하는 사람들이 마구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정말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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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다에서 해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해가 바다 쪽이 아니라 시내 쪽으로 진다고 해서 그냥 저녁만 먹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바다에 왔으니 해산물이 들어간 것을 먹으려고 해산물빠에야랑 세비체 중에 엄청나게 고민했다. 빠울로 형이 인스타에 세비체 올린 것을 보고 세비체가 너무나도 땡겼는데 얼마 전에 먹었던 빠에야가 좀 구려서 제대로 된 빠에야 좀 먹자는 마음으로 시켰다. 시키고 나서는 수영이가 빠에야는 기본 2인분이라서 2인분 덤탱이 쓰는거 아니냐고 약간 마음 졸이기도 했는데 다른 메뉴에는 2인분부터 라는 언급이 되어 있는데 빠에야는 아니어서 약간 마음을 놓았다. 신기하게도 여기 빠에야는 일단 팬에다가 2인분을 조리하고 내 자리로 와서 보여준 다음 1인분만 덜어준다. 남은 1인분은 어찌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사람이 시키면 거기에 또 1인분 추가해서 조리하나? 암튼 저 빠에야 너무나도 맛있다. 새우도 새우지만 쌀 중간중간 박힌 푸짐한 오징어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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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체스 여행을 마무리한다.